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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전환사채)와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본질적 위험성

주식 시장 마감 후, 보유하고 있던 종목에서 갑자기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공시가 뜨고 시간외 거래에서 하한가를 가는 경험, 주식 투자자라면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회사가 자금을 조달한다는데 왜 주가는 곤두박질칠까요? 겉으로는 ‘운영 자금 확보’나 ‘신사업 투자’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훼손하는 무서운 메커니즘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CB와 BW가 주가에 미치는 구체적인 악영향과, 전자공시(DART)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심층 분석해 드립니다.

1. CB(전환사채)와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본질적 위험성

CB와 BW는 채권(Debt)과 주식(Equity)의 중간 성격을 띠는 ‘메자닌(Mezzanine)’ 금융 상품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 대출보다 까다롭지 않게 돈을 빌릴 수 있어 선호하지만, 기존 주주에게는 ‘잠재적인 물량 폭탄’과 같습니다.

주식 가치의 희석 (Stock Dilution)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주식 수의 증가입니다.

  • CB (Convertible Bond): 채권으로 보유하다가 일정 기간 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

  • BW (Bond with Warrant): 채권은 그대로 두고, 약정된 가격에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Warrant)만 따로 행사할 수 있는 사채.

이 권리들이 행사되면 시장에 새로운 주식이 상장됩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순이익)은 그대로인데 주식 수(나눠 먹을 입)가 늘어나니, 1주당 순이익(EPS)은 필연적으로 감소합니다. 내가 가진 1주의 가치가 10,000원에서 8,000원, 7,000원으로 묽어지는 것입니다.

오버행(Overhang) 이슈와 매도 압력

단순한 희석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대기 매물’입니다. CB나 BW를 인수하는 투자자(사모펀드, 투자조합 등)는 회사의 장기 성장보다는 차익 실현이 주목적입니다. 주식 전환 가능 시기가 도래하면, 이들은 언제든 주식으로 바꿔 시장에 내다 팔 준비를 합니다. 이를 오버행(Overhang)이라고 합니다. 주가가 조금만 오르려 해도 “저 많은 CB 물량이 쏟아지면 어쩌지?”라는 공포감 때문에 매수세가 실종되고, 주가는 상승 탄력을 잃게 됩니다.

리픽싱(Refixing)의 저주: 죽음의 소용돌이

한국 시장에서 특히 악명 높은 조항이 바로 리픽싱(전환가액 조정)입니다. 주가가 하락하면 채권자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가격을 깎아주는 제도입니다.

  1. 주가가 떨어지면 전환가액을 낮춰줍니다 (예: 1주당 1,000원 → 700원).

  2. 전환가액이 낮아지면, 채권자가 받아갈 수 있는 주식의 수량은 늘어납니다.

  3. 늘어난 주식 수는 나중에 더 큰 매도 물량이 되어 주가를 다시 짓누릅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주가는 끝없이 추락하고 발행 주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현상이 발생합니다. 리픽싱 조항이 있는 CB 발행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에게 꽃놀이패를 쥐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2. 전자공시(DART) 필수 확인 항목: 이것만은 꼭 보세요

공시가 떴을 때 당황하지 말고 DART 원문을 열어 다음 4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내용에 따라 ‘단기 악재’인지 ‘탈출해야 할 신호’인지가 갈립니다.

자금 조달의 목적 (가장 중요)

공시 최상단의 [자금 조달의 목적]을 확인하십시오.

  • 시설 자금: 공장 증설, 설비 투자 등. 회사의 성장을 위한 투자이므로 중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 M&A나 지분 투자. 시너지 효과가 명확하다면 좋지만, 본업과 무관한 문어발식 확장이나 테마주 편승이라면 위험합니다.

  • 운영 자금 / 채무 상환 자금: 가장 위험한 신호입니다. 원자재 살 돈이 없거나 빚 갚을 돈이 없어서 또 빚을 내는 격입니다. 재무 상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전환가액과 리픽싱 조항 유무

[전환가액]이 현재 주가 대비 얼마나 할인되었는지, 그리고 [전환가액 조정] 항목이 있는지 보세요.

  • 최근 규제로 상향 리픽싱(주가 상승 시 전환가 상향)이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하향 리픽싱(주가 하락 시 전환가 하향)은 70%~최저 액면가까지 가능합니다.

  • “조정 후 전환가액의 최저 한도는 액면가로 한다”라는 문구가 있다면, 주가가 액면가(보통 100원, 500원)까지 떨어질 때까지 물량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채 만기일과 조기상환청구권(Put Option)

  • 풋옵션(Put Option): 채권자가 회사에 “주식으로 안 바꿀 테니 원금 돌려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 재무가 부실한 기업에 풋옵션 행사 기간이 다가오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회사는 갚을 현금이 없는데 상환 요청이 빗발치면 유상증자를 때리거나 최악의 경우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매도청구권(Call Option)과 최대주주

콜옵션(Call Option)은 회사가 채권을 다시 사올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것이 소액주주에게 중요한 이유는 ‘최대주주의 지분 뻥튀기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입니다.

  • 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CB를 헐값에 사온 뒤, 이를 최대주주에게 넘깁니다.

  • 최대주주는 현재 주가보다 훨씬 싼 전환가액으로 주식을 확보해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 공시에 “매도청구권자를 제3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면, 십중팔구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용입니다.

3. 현명한 투자자의 대응 전략

CB/BW 공시를 확인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무조건 매도보다는 냉철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시가총액 대비 발행 규모 확인

발행 금액이 시가총액의 10% 이상이라면 매우 위험합니다. 20~30%에 육박하는 대규모 발행은 주가 희석 효과가 너무 커서, 아무리 좋은 호재가 있어도 주가가 오르기 힘듭니다. 반면, 시총 대비 1~2% 수준의 미미한 규모라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대상자가 누구인가? (공모 vs 사모)

  • 공모(Public): 불특정 다수에게 발행. 절차가 까다롭고 투명합니다.

  • 사모(Private): 특정인(투자조합, 저축은행 등) 지정 발행. 가장 주의해야 합니다.

    • 특히 실체가 불분명한 ‘OOO투자조합’이 대상자라면, 주가 조작 세력과 연루되었거나 단기 차익만 노리고 들어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들은 보호예수 기간(보통 1년)이 끝나자마자 물량을 쏟아냅니다.

내가 보유한 종목이 ‘운영 자금’ 목적으로, ‘시가총액 대비 10% 이상’의 ‘사모 CB’를 발행했고, ‘리픽싱 조항’까지 있다면? 이는 회사가 주주를 ‘자금 조달의 도구’로만 본다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미련 없이 비중을 축소하거나 전량 매도하여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내 계좌를 지키는 길입니다. 주식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화려한 장밋빛 전망보다, 기업의 현금 흐름과 자금 조달 방식을 먼저 챙겨야 합니다.